작성일: 2026년 6월 15일
참고 기사
- https://weekly.khan.co.kr/article/202606121510001/ (주간경향, [한용현의 노동법 새겨보기] (62) 인간을 고용하지 마라, 2026.06.12)
- https://www.moel.go.kr/news/enews/report/enewsView.do?news_seq=18725 (고용노동부 2026년 업무보고)
- https://idr.jinbo.net/wordpress/wp-content/uploads/2026/01/연구보고서-금융공공-콜센터AI-도입현황과-문제점_노동조합의-과제연구_202512.pdf (공공·금융 콜센터 AI 도입 현황과 문제점, 2025.12)
서론: 데이터가 당신의 미래를 결정한다
2026년, 이력서를 넣은 뒤 가장 먼저 마주치는 면접관이 AI라는 사실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국내 주요 대기업은 물론 중견기업까지 AI 기반 채용 스크리닝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며, 재직자를 대상으로 한 AI 인사평가·근태감시 시스템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AI 알고리즘은 구직자의 표정·어조·단어 선택을 분석해 합격 여부를 결정하고, 재직 근로자의 업무 패턴·생산성·커뮤니케이션 데이터를 수집해 승진과 해고의 근거 자료로 삼는다.
문제는 이 거대한 변화가 기존 노동법의 보호망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26년 1월 시행된 인공지능기본법(AI 기본법)은 고영향 AI에 대한 인간 감독 의무를 규정하고 있지만, 채용·인사에 쓰이는 AI 시스템에 대한 구체적인 근로자 보호 조항은 여전히 공백 상태다. 고용노동부가 2026년 상반기 중 노동 분야 AI 윤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고 예고한 것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에서는 AI 도입으로 야기되는 주요 노동법적 쟁점을 짚어보고, 현행 법령의 적용 범위와 한계, 그리고 근로자와 기업이 취할 수 있는 실무적 대응 방향을 살펴본다.
본론: 알고리즘은 공정한가 — 현행 노동법의 적용과 한계
1. AI 채용·인사 시스템의 확산과 차별 위험
AI 알고리즘은 과거 데이터를 학습해 패턴을 찾아낸다. 만약 특정 기업이 과거에 특정 성별·연령·출신 지역 지원자를 주로 채용해왔다면, AI는 이 패턴을 ‘정답’으로 인식하고 동일한 편향을 재생산한다. 실제로 미국 아마존은 이력서 스크리닝 AI가 여성 지원자를 체계적으로 낮게 평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시스템을 폐기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AI 역량 검사 도구가 특정 대학 출신이나 특정 어투를 가진 지원자에게 유리하게 작동한다는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AI 근태 감시 시스템도 심각한 논란을 낳고 있다. 일부 기업은 직원의 PC 화면 캡처, 키보드 타이핑 속도, 이메일 응답 시간, 사내 메신저 활동량 등을 수집·분석해 생산성 점수를 산정한다. 이러한 감시가 상시화되면 근로자는 극도의 심리적 압박 속에 놓이며, 알고리즘이 측정 가능한 지표만 쫓는 왜곡된 근로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 공공·금융 콜센터 분야에서도 AI 모니터링 도입 이후 감시 강도가 높아지면서 근로자의 정신 건강이 악화되고 이직률이 높아지는 현상이 보고되고 있다.
2. 현행 노동법의 적용 가능 조항
현행 노동법에도 AI 차별 문제에 적용할 수 있는 조항은 여럿 존재한다. 먼저, 근로기준법 제6조(균등한 처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채용 및 평가에 사용된 AI가 이 조항이 열거하는 사유를 이유로 불리한 결과를 산출했다면, 이는 근로기준법 위반에 해당할 수 있다.
채용 단계에서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남녀고용평등법) 제7조가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한다. 특히 같은 법 제2조는 차별의 정의에 ‘간접차별’ 개념을 포함한다. 즉 채용조건이나 근로조건을 동일하게 적용하더라도 그 조건을 충족할 수 있는 남성 또는 여성이 다른 성(性)에 비하여 현저히 적고 그에 따라 특정 성에게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를 차별로 본다. 표면적으로 성 중립적인 AI 알고리즘이 결과적으로 특정 성별에 불리한 결과를 낸다면 이 간접차별 조항이 적용될 수 있다.
연령 측면에서는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이 합리적인 이유 없이 연령을 이유로 하는 고용차별을 금지한다. AI 시스템이 학습 데이터에서 고령자 채용 실적이 적다는 이유만으로 일정 연령 이상의 지원자를 자동 탈락시킨다면 이 법의 위반이 문제될 수 있다.
재직자 처우 문제에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8조(차별적 처우의 금지)도 관련된다. 사용자는 기간제근로자임을 이유로 동종·유사 업무 종사 비교 대상 근로자에 비해 임금, 정기상여금, 성과금, 기타 근로조건 및 복리후생에서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되는데, AI 인사평가 시스템이 정규직과 기간제 직원에게 다른 기준을 사실상 적용한다면 이 조항에 해당할 수 있다.
3. 현행법의 구조적 한계와 입법 공백
그러나 현행 법령의 적용에는 명확한 구조적 한계가 있다. 첫째, 알고리즘의 불투명성(블랙박스)이다. 근로자가 AI 차별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이 어떻게 작동했는지를 입증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AI 시스템은 내부 로직을 공개하지 않는다. 사용자가 영업 비밀을 이유로 알고리즘 공개를 거부하면 피해 근로자 측의 입증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둘째, 근로기준법 제6조가 열거하는 차별 금지 사유(성별, 국적, 신앙, 사회적 신분)는 AI가 실제로 학습하는 수많은 변수들—학력, 직업 경력, 거주 지역, 언어 패턴 등—을 망라하지 못한다. 간접 차별 개념도 남녀고용평등법 등 일부 법령에만 규정되어 있어, 성별 이외의 사유로 인한 알고리즘 차별에 폭넓게 적용하기 어렵다.
셋째, AI 상시 감시에 대해서는 적용 가능한 직접 규율 조항 자체가 없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사용자의 근로자 감시를 명시적으로 제한하는 조항이 없고, 개인정보 보호법이 간접 적용될 뿐이다. 반면 EU AI 법(AI Act)은 2026년 8월부터 채용·인사 평가에 사용되는 AI를 ‘고위험 AI’로 분류해 인간의 감독, 차별 모니터링, 투명성 확보를 법적으로 의무화한다. 이와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입법 공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결론: 알고리즘에도 노동법의 원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AI 기술은 채용·평가의 효율성을 높이는 도구이지만, 편향된 데이터를 학습한 알고리즘은 기존의 차별을 자동화하고 확대재생산할 위험이 있다. 근로기준법 제1조는 이 법의 목적이 “근로자의 기본적 생활을 보장, 향상시키며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꾀하는 것”이라고 명시한다. 이 원칙은 AI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채용 또는 인사 과정에서 AI 시스템이 사용되는지 여부를 적극적으로 확인하고, 불이익한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판단 근거를 서면으로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업 입장에서도 AI 도입 전 알고리즘 편향 검증, 결과에 대한 인간의 최종 검토 절차 마련, 근로자 대상 안내 등을 선제적으로 갖춰야 법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입법적으로는 AI 알고리즘 차별을 직접 규율하는 조항 신설, 알고리즘 투명성 의무, 근로자의 알고리즘 설명 요청권 보장이 조속히 검토되어야 한다. 알고리즘이 인사권의 일부를 행사하는 시대, 법도 그에 맞게 진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