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870만 명을 법 안으로 — ‘근로자’라는 문턱은 어떻게 낮아지는가

⚠️ 법령 인용 안내
본 글에서 언급하는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가칭)은 현재 국회에서 논의 중인 제정 법안으로, 첨부 자료(노동법 13종)에 수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법안의 구체적 조문과 진행 경과는 국가법령정보센터 및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인용된 근로기준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고용보험법 조항은 모두 첨부 자료에 수록된 현행 법령입니다.

작성일: 2026년 8월 15일

참고 기사

서론 — “근로자가 아니면, 보호받지 못하는가”

2026년 하반기 노동정책의 한복판에 「일하는 사람의 권리에 관한 기본법」 제정 논의가 놓여 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2026년 업무보고에서 플랫폼 종사자·특수형태근로종사자·프리랜서 등 기존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이 급증했다고 진단하며, 모든 일하는 사람을 포괄하는 ‘권리 장전’ 성격의 기본법 제정을 핵심 과제로 제시했습니다.

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기사, 웹툰 작가, 학습지 교사, 프리랜서 디자이너. 이들은 매일 일하고 매달 소득을 얻지만, 근로기준법이 말하는 ‘근로자’가 아니라는 한 문장 때문에 연차휴가도, 해고 제한도, 최저임금도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규모가 870만 명에 이른다는 추계도 나옵니다.

오늘은 이 기본법 논의가 왜 지금 등장했는지, 현행 노동법이 이미 어디까지 와 있는지, 그리고 사업주와 일하는 사람이 각각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짚어보겠습니다.

본론 — 현행법의 ‘세 겹 방어선’과 기본법이 메우려는 빈칸

1. 출발점: 근로기준법의 두 개의 문턱

모든 논의는 근로기준법 두 조문에서 출발합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제1호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사람을 말한다”고 정의합니다. 제11조제1항은 “이 법은 상시 5명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노동법의 보호를 받으려면 ① 근로자에 해당해야 하고, ② 상시 5인 이상 사업장이어야 한다는 두 개의 문턱을 넘어야 합니다. 문제는 첫 번째 문턱입니다. 판례는 계약의 형식이 아니라 사용종속관계라는 실질로 근로자성을 판단해 왔지만, 이 판단은 사후적이고 개별적입니다. 라이더 한 명이 근로자인지 확인받으려면 진정과 소송을 거쳐 수년이 걸립니다. 그 사이의 공백은 오롯이 일하는 사람의 몫입니다.

2. 이미 세워진 방어선: 산재보험과 고용보험의 특례

다만 우리 법이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회보험 영역에서는 이미 ‘근로자’ 개념 밖으로 보호가 확장되어 있습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91조의15는 ‘노무제공자’를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를 지급받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사업주로부터 직접 노무제공을 요청받은 경우뿐 아니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요청받은 경우까지 포함시켰습니다. 같은 조는 ‘플랫폼 종사자’, ‘플랫폼 운영자’, ‘플랫폼 이용 사업자’를 각각 정의하고, ‘보수’와 ‘평균보수’ 개념까지 별도로 마련해 두었습니다. 근로자의 ‘임금·평균임금’에 대응하는 개념을 노무제공자용으로 따로 만든 것입니다.

고용보험법 제77조의6은 “근로자가 아니면서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의 사업을 위하여 자신이 직접 노무를 제공하는” 노무제공자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합니다. 법 문언 자체가 “근로자가 아니면서”로 시작한다는 점이 상징적입니다. 근로자성 판단을 우회해 소득 활동 자체를 기준으로 보호망을 씌운 것입니다.

3. 그럼에도 남는 빈칸

여기까지가 현행법의 도달점입니다. 그런데 산재보험법과 고용보험법의 특례는 모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는 단서를 달고 있습니다. 직종 열거 방식이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일이 등장하면 시행령 개정 전까지는 보호 밖에 놓입니다. 기술 변화 속도가 입법 속도를 앞지르는 영역에서 이 시차는 구조적 사각지대가 됩니다.

또한 사회보험은 ‘사고 이후’와 ‘실직 이후’를 다룹니다. 계약을 맺는 순간의 공정성, 일하는 도중의 안전, 대가를 제때 받을 권리, 부당한 계약 해지에 대한 이의제기 — 이 영역은 여전히 비어 있습니다. 논의 중인 기본법이 겨냥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공정한 계약 체결권,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할 권리, 분쟁 발생 시 국가의 조력을 법률에 명시하겠다는 것입니다.

4. 사례로 보는 경계선

플랫폼 배달 업체 A사가 라이더와 ‘배송 위탁 계약’을 체결한 상황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계약서에는 근로자가 아니라고 명시되어 있고, 라이더는 배차를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앱이 배차 순서와 배송 시간을 통제하고, 거절이 반복되면 배차 순위가 떨어집니다.

이 경우 결론은 하나가 아니라 셋으로 갈립니다. ①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은 지휘·감독의 실질을 놓고 다투게 되고, ② 산재보험법 제91조의15의 ‘플랫폼 종사자’에는 근로자성 판단과 무관하게 해당할 가능성이 높으며, ③ 고용보험법 제77조의6의 노무제공자 적용도 별도로 검토됩니다. 하나의 계약이 세 갈래로 나뉘어 판단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실무상 흔한 오해가 드러납니다. “근로자가 아니라고 합의했으니 보험도 필요 없다”는 판단인데, 산재보험법과 고용보험법의 특례는 애초에 근로자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설계된 제도입니다. 근로자성 합의는 이 의무를 면제하지 못합니다.

5. 실무적 파장 — “근로자가 아니니 상관없다”가 통하지 않는다

사업주 입장에서 실질적 영향은 세 갈래입니다.

첫째, 계약서의 이름이 방패가 되지 않습니다. 프리랜서 계약, 위탁 계약, 도급 계약이라는 표제는 근로자성 판단에서 이미 결정적 요소가 아닙니다. 근로기준법 제3조가 “이 법에서 정하는 근로조건은 최저기준이므로 근로 관계 당사자는 이 기준을 이유로 근로조건을 낮출 수 없다”고 못박고 있는 취지도 같습니다.

둘째, 보험료와 신고 의무가 선행합니다. 근로자성 다툼과 무관하게, 해당 직종이 노무제공자에 해당하면 고용보험 피보험자격 신고와 산재보험 적용이 곧바로 문제 됩니다. 미신고가 확인되면 소급 부과가 이루어집니다.

셋째, 계약 관행 전반의 정비가 필요합니다. 대가 산정 기준, 지급 시기, 계약 해지 사유와 절차, 안전 관련 정보 제공을 계약서에 명시해 두는 것이 최선의 방어입니다.

결론 — ‘계약서의 이름’이 아니라 ‘일하는 실질’을 준비할 때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근로기준법 제2조제1항제1호와 제11조제1항이 세운 두 개의 문턱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산재보험법 제91조의15와 고용보험법 제77조의6이 이미 그 옆으로 별도의 통로를 내 두었습니다. 논의 중인 기본법은 이 통로를 직종 열거에서 벗어나 ‘일하는 사람’ 전체로 넓히려는 시도입니다.

사업주에게 드리는 조언은 명확합니다. 지금 사용 중인 비근로자 계약을 목록화하고, 각각이 노무제공자 특례 직종에 해당하는지부터 확인하십시오. 해당한다면 고용·산재보험 신고 상태를 점검하고, 해당하지 않더라도 지휘·감독의 실질이 있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일하는 분들께는 두 가지를 권합니다. 계약 형태와 무관하게 업무 지시 기록, 근무 시간 기록, 대가 지급 내역을 남겨두십시오. 그리고 산재보험·고용보험 가입 여부는 스스로 확인할 수 있으니, 미가입 상태라면 즉시 문의하시기 바랍니다.

법이 바뀌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있는 법만으로도 확인하고 준비할 것이 충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