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급식 조리사 폐암 산재 인정 이후, 법원이 인정한 지자체의 배상 책임

작성일: 2026년 9월 23일 참고 기사: 학교 급식실서 일하다 폐암…법원, 지자체 배상책임 첫 인정

13년 방치된 위험, 법원까지 간 이유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26년 9월 8일, 학교 급식실 조리사 9명이 대한민국과 광주광역시·전라남도·경상북도·부산광역시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자체별로 원고 1인당 1천만 원씩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광주 4명, 전남 2명, 부산 2명, 경북 1명). 이들은 음식을 튀기거나 볶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기름 입자인 ‘조리흄’에 장기간 노출돼 폐암을 진단받았고, 이미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상태였습니다. 법원은 지자체가 조리흄을 제대로 배출할 환기시설을 갖추지 않고 적절한 보호구도 지급하지 않은 채, 위험을 최소 13년간 방치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사건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히 산재를 인정받은 데 그치지 않고, 산재 승인 이후 별도의 민사소송으로 사용자의 책임을 추가로 물어 승소했다는 점입니다. 조리흄처럼 눈에 잘 띄지 않는 유해 요인에 장기간 노출되는 일터는 급식실 외에도 적지 않고, 산재를 인정받았다고 해서 모든 책임 관계가 끝나는 것도 아닙니다. 이번 글에서는 산재보험법상 업무상질병이 어떻게 인정되는지, 그리고 산재 인정과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실무적 관점에서 정리합니다.

산재 인정과 손해배상, 무엇이 다른가

이번 사건에서 조리사들은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2022년부터 2024년 사이 순차적으로 업무와 폐암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받아 산업재해 승인을 받았습니다. 산재보험법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는 업무상 질병을 “업무수행 과정에서 물리적 인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 근로자의 건강에 장해를 일으킬 수 있는 요인을 취급하거나 그에 노출되어 발생한 질병”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리흄에는 벤조피렌 등 발암물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장기간 노출과 폐암 발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면 이 조항에 따라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될 수 있습니다. 다만 업무상 질병의 인정 여부는 공단 소속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산재보험법 제38조에 규정되어 있고, 산재로 인정되면 같은 법 제40조에 따른 요양급여를 통해 치료비 등을 지급받게 됩니다.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되면 근로자는 산재보험법 제36조(보험급여의 종류와 산정 기준 등)에 따라 요양급여 외에도 치료 기간 중 소득을 보전해 주는 휴업급여, 치유 후 장해가 남으면 지급되는 장해급여, 사망 시 유족에게 지급되는 유족급여 등 여러 보험급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급여는 법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정형화된 방식으로 산정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실제로 겪은 정신적 고통이나 개별 사정을 온전히 반영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번 판결이 산재 인정과 별도로 위자료 배상을 인정한 것도 이런 한계를 보완하는 성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산재보험법에 따른 보상은 어디까지나 사회보험 방식의 정액·정률 보상입니다. 이번 판결에서 법원이 인정한 위자료 배상은 이와는 별개로, 사용자가 근로자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부담하는 ‘안전배려의무’를 위반했는지를 따지는 민사상 책임입니다. 이 안전배려의무는 법률에 구체적 조문으로 명시된 개념이라기보다는, 법원이 여러 판결을 통해 형성해 온 판례 법리라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법원은 이번 사건에서 지자체가 2010년 무렵부터 조리흄의 폐암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부적절한 환기설비만 설치한 채 2023년까지 개선하지 않았고, 조리사 1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과도한 식수 인원을 방치했으며 적절한 보호구조차 지급하지 않은 점을 근거로 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특히 법원은 “당시 법령이나 지침을 준수했다거나 사후적으로 환경을 개선했다는 사정만으로는 안전배려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혀, 형식적 기준 준수보다 실질적으로 위험이 줄었는지를 중요하게 봤습니다. 다만 이번 판결에서 국가를 상대로 한 배상청구는, 일정 시점 이전 학교 급식실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전부 적용되지 않았다는 사정 등을 이유로 기각되어, 책임 주체와 시기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이 사건은 급식실이라는 특정 직종의 문제로만 볼 일이 아닙니다. 분진, 화학물질, 소음, 반복 작업 등 건강에 해로운 요인에 장기간 노출되는 일터는 제조업 현장, 청소·환경미화 업무, 미용업 등 다양한 업종에 존재합니다. 산재보험법 제37조가 업무상 질병의 범위를 “물리적 인자, 화학물질, 분진, 병원체, 신체에 부담을 주는 업무 등”으로 폭넓게 규정하고 있는 만큼, 자신의 업무 환경에 유사한 유해 요인이 있는지를 살펴보는 계기로 삼을 만합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공공부문 사용자인 지자체·교육청에도 안전배려의무가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을 보여줘, 공공기관 근로자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직장인이 챙겨야 할 산재 대응 원칙

이번 사건은 산재 승인을 받았다고 해서 근로자의 권리 구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업무 중 유해 인자에 노출되어 질병이 발생했다면, 먼저 산재보험법 제37조에 따른 업무상질병 요건에 해당하는지를 살펴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하고, 제40조의 요양급여와 제36조가 정한 휴업급여·장해급여 등을 통해 치료비와 소득 손실을 보전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이후 작업환경이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았거나 사업주(또는 사용자)가 위험을 알고도 방치한 정황이 있다면, 산재 보상과는 별도로 안전배려의무 위반을 이유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검토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는 사안마다 입증 책임과 결론이 크게 달라지는 영역이므로, 노무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와 함께 구체적인 근무 환경과 노출 이력, 사업주의 인지 시점 등을 꼼꼼히 정리해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무엇보다 이번 판결이 남긴 메시지는, 형식적으로 법령을 지켰다는 사실만으로는 사용자의 책임이 면제되지 않으며, 근로자의 건강을 실질적으로 지키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용 법령

  •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 [법률 제21375호, 2026. 2. 19. 일부개정, 시행 2026. 7. 1.] 제37조(업무상의 재해의 인정 기준), 제38조(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제40조(요양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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