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6년 8월 17일
참고 기사
- 20년 만에 ‘퇴직연금 제도’ 대대적 개편…모든 사업장 의무화 추진 (정책브리핑)
- 2026년 하반기 노동정책 방향 공개…인건비 구조·인력공급 체계 재편 예고 (전국인력신문)
- 퇴직연금 의무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ㅣ어떤 변화 불러올까? (KB Think)
⚠️ 안내: 본 글에서 언급하는 ‘퇴직급여 사외적립 전면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는 노사정 논의 및 정부 정책 발표 단계의 내용으로, 아직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에 반영되지 않은 입법 예정 사항입니다. 따라서 해당 내용은 첨부 법령 자료에 수록되어 있지 않으며, 확정된 조문이 아닙니다. 아래에서 조문 번호와 함께 인용하는 내용은 모두 현행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의 규정이며, 향후 개정 경과는 국가법령정보센터(law.go.kr)에서 원문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서론: 20년 만에 다시 짜이는 퇴직급여의 틀
퇴직급여 제도가 근본부터 바뀔 조짐입니다. 2026년 2월 노사정 논의를 통해 ‘퇴직급여의 사외적립 의무화’와 ‘기금형 퇴직연금 활성화’라는 방향이 정리됐고, 8월 발표된 하반기 노동정책 방향에서도 인건비 구조 재편의 핵심 과제로 다시 언급됐습니다. 모든 사업장이 퇴직급여 재원을 사내에 쌓아두는 대신 외부 금융기관에 적립하도록 하고, 전문기관이 굴리는 기금형 제도를 선택지로 추가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다만 시행 시기와 단계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중소기업 실태조사와 법률 개정 절차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업주가 “아직 먼 이야기”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위험한 오해입니다. 사외적립 의무화가 논의되는 이유 자체가, 현행법상 이미 강제되고 있는 의무조차 지켜지지 않는 현실 때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의무화 논의에 앞서 지금 당장 적용되고 있는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의 핵심 조항 다섯 가지를 점검해 보겠습니다.
본론: 의무화 이전에 이미 강제되고 있는 다섯 가지
1. 퇴직급여제도 설정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 — 제4조·제11조
법 제4조 제1항은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고 정합니다. 다만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는 제외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설정 자체’가 의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제11조는 사용자가 퇴직급여제도나 개인형퇴직연금제도를 아예 설정하지 않은 경우, 제8조 제1항에 따른 퇴직금제도를 설정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합니다. 즉 “우리는 퇴직연금에 가입하지 않았으니 지급 의무가 없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법정 퇴직금제도가 자동으로 적용되고, 제8조 제1항에 따라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지급해야 합니다.
또한 제4조 제2항은 하나의 사업에서 급여 및 부담금 산정방법의 적용 등에 차등을 두는 것을 금지합니다. 정규직은 DB형, 계약직은 퇴직금제도처럼 집단별로 수준을 달리 설계하면 차등 설정에 해당할 수 있고, 제45조 제1호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대상이 됩니다.
2. 제도를 바꾸려면 근로자대표의 동의가 필요하다 — 제4조 제3항·제4항
퇴직연금 의무화가 현실화되면 상당수 사업장이 퇴직금제도에서 퇴직연금제도로 전환하게 됩니다. 이때 절차를 빠뜨리면 전환 자체가 무효가 될 수 있습니다.
제4조 제3항은 퇴직급여제도를 설정하거나 다른 종류의 제도로 변경하려는 경우, 근로자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이 있으면 그 노동조합,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근로자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합니다. 제4항은 이미 설정·변경된 제도의 내용을 바꿀 때는 근로자대표의 의견 청취로 족하지만,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다시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정합니다.
DB형에서 DC형으로의 전환은 임금 인상률이 높은 사업장에서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 실무상 다툼이 잦습니다. 동의 없이 진행한 뒤 몇 년이 지나 퇴직자가 차액을 청구하는 사례가 반복됩니다. 제46조 제1호는 제4조 제3항·제4항을 위반해 동의를 받지 않거나 의견을 듣지 않은 사용자에게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정하고 있습니다.
3. 사외적립의 본질은 ‘기한 내 지급 능력’ — 제9조·제17조·제20조
사외적립 의무화가 겨냥하는 지점은 결국 지급 능력입니다. 현행법도 이미 촘촘한 기한을 두고 있습니다.
- 퇴직금제도: 제9조 제1항은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 지급사유가 발생한 날부터 14일 이내 지급을 의무화합니다.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당사자 간 합의로 연장할 수 있을 뿐입니다. 제2항에 따라 퇴직금은 근로자가 지정한 개인형퇴직연금제도(IRP) 계정 등으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지급해야 하며, 계정을 지정하지 않으면 제3항에 따라 근로자 명의 IRP 계정으로 이전합니다.
- DB형(확정급여형): 제17조 제2항은 급여 사유 발생일부터 14일 이내에 퇴직연금사업자로 하여금 적립금 범위에서 급여 전액을 지급하도록 할 것을 요구하고, 제3항은 그 지급액이 제15조의 급여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부족액을 사용자가 14일 이내에 직접 지급하도록 합니다. 적립 부족의 최종 책임은 사용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 DC형(확정기여형): 제20조 제1항은 가입자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을 현금으로 납입할 것을, 제3항은 매년 1회 이상 정기 납입을 요구합니다. 기일까지 납입하지 않으면 그 다음 날부터 납입일까지 지연 일수에 대해 연 100분의 40 이내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이율의 지연이자를 부담합니다. 제5항은 가입자 퇴직 등의 사유가 발생했는데 부담금을 미납한 경우, 사유 발생일부터 14일 이내에 부담금과 지연이자를 함께 납입하도록 합니다.
실무에서 가장 흔한 사고는 DC형 부담금을 자금 사정에 따라 연말에 몰아 납입하는 관행입니다. 규약상 납입 기일을 넘긴 순간부터 지연이자가 쌓이고, 이는 뒤에서 볼 우선변제 대상에도 포함됩니다.
4. 위반의 대가는 형사처벌 — 제44조
제44조는 제9조 제1항을 위반해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은 자, 근로자가 퇴직할 때 제17조 제2항·제3항이나 제20조 제5항 등을 위반해 급여를 지급하지 않거나 부담금·지연이자를 납입하지 않은 자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합니다. 다만 이 두 유형은 피해자의 명시적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 규정이 적용됩니다. 합의가 사건 처리에 영향을 준다는 의미이지, 의무 자체가 사라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편 제10조는 퇴직금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3년으로 정합니다. 3년이 지나기 전이라면 퇴사한 지 한참 지난 근로자도 미지급 퇴직금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5. 도산 시 최우선 순위 — 제12조
제12조 제1항은 퇴직금, DB형 급여, DC형·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IRP의 미납입 부담금과 그 지연이자를 ‘퇴직급여등’으로 묶어, 사용자의 총재산에 대해 질권·저당권으로 담보된 채권을 제외하고는 조세·공과금 및 다른 채권에 우선하여 변제되도록 합니다. 나아가 제2항은 최종 3년간의 퇴직급여등은 담보권부 채권, 조세·공과금, 다른 채권 모두에 우선한다고 규정합니다. 사외적립이 되어 있지 않으면 이 최우선변제권도 회사 재산이 남아 있어야 실효를 갖습니다. 의무화 논의의 실질적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론: 의무화를 기다리지 말고, 지금 세 가지를 확인하십시오
퇴직연금 사외적립 전면 의무화는 아직 입법 예정 단계입니다. 시행 시기도 미정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제4조, 제9조, 제17조, 제20조, 제44조는 지금 이 순간 적용되고 있는 현행 규정입니다. 의무화는 새로운 부담을 창설한다기보다, 이미 있는 의무를 실제로 이행하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사업주라면 세 가지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우리 사업장에 퇴직급여제도가 실제로 ‘설정’되어 있는가. 설정하지 않았다면 제11조에 따라 이미 퇴직금제도가 적용 중입니다. 둘째, DC형이라면 부담금이 규약상 기일에 맞춰 납입되고 있는가. 늦어진 만큼 제20조 제3항의 지연이자가 붙습니다. 셋째, 제도 전환을 검토 중이라면 제4조 제3항의 근로자대표 동의 절차를 문서로 남기고 있는가.
근로자라면 퇴직 후 14일이 지나도 퇴직금이나 IRP 이전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 제9조와 제44조를 근거로 관할 지방고용노동관서에 진정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청구권은 3년간 유효합니다. 제도가 바뀌기 전에 지킬 것을 먼저 지키는 사업장이, 개편의 부담도 가장 적게 지게 됩니다.